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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이 골드(Bieres De Chimay Blonde Doree)맥주 2023. 3. 20. 07:49728x90

세계에서 맥주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는 어디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독일을 거론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단언컨대 벨기에가 맥주의 정점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벨기에를 대표하는 벨지언 에일(Belgian Ale) 중에서도
아주 적은 수의 양조장만이 갖게 되는 트라피스트 에일(Trappist Ale)이라는 이름은
이미 많은 맥주 팬들에겐 그 이름만 들어도 감동적인 것이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Authentic Trappist Product(ATP)에서 정식 인증을 받은 11개의 제품, 현재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각 1개 추가되어 총 13개. 트라피스트 에일은 가톨릭의 엄률 시토회(Ordo Cisterciensis Strictioris Observantiae, O.C.S.O.) a.k.a 트라피스트회라고 하는
관상수도회에서 제조한 애비 에일(Abbey Ale)을 뜻한다.
애비 에일은 그냥 수도원에서 만든 벨지언 에일을 통칭하여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 트라피스트 에일은
-벨지언 에일
- 애비 에일
- 트라피스트 에일
이런 식의 하위 분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수도원에서 만든 것을 기원으로 한다는 데 있어서는 애비 에일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맛으로만 본다면 어떤 제품의 경우 트라피스트 에일을 능가하는 애비 에일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맛만 따진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알았을 때 더욱 재미가 있는 법이다.
트라피스트회는 본래 베네딕토회를 기반으로 한 수도회이다.
베네딕토회는 노동생활과 기도생활을 강조하며 이러한 것을 한 장소에 모여 공동체로서 행할 것을 규칙으로 하고 있다.
트라피스트회 또한 마찬가지로 공동체 생활 안에서 기도와 노동을 통해 수도자로서의 삶을 사는 곳이다.
그런데 왜 술을 만드냐고?
일단 미사의 성찬례에 쓸 포도주는 항상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해야하는 사순 시기에 수도자와 신자들은 아주 절제된 식음을 통해 수난을 함께 해야하기에
곡물로 이루어진 마시는 빵인 맥주는 한 잔으로 식사를 대체할 좋은 수단이었다.
그리고 포도주와 맥주를 양조하는 것은 상당한 중노동이었으므로 공동체의 규율을 잘 지키는 것이었다.
때문에 수도회에서는 맥주를 만들고 마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목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수사님께선 현재 흥청망청 취해가는 것이 아닌, 사목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을 강타한 오랜 전쟁으로 인해 많은 수도원이 사라지게 되었고
이 때 세속으로 수도회의 양조법이 팔려나가게 되었다.
그나마 팔려나간 쪽은 다행인 것이, 여러 변화를 주기도 했으나 맛을 계승 발전하려는 의지가 있는 양조장이 많았고
현재까지 긍정적인 진보를 이뤄낸 곳도 있다.
그러나 수도회 맥주가 세속으로 나오게 됨에 따라
아무 상관이 없는 양조장에서 아무 상관이 없는 맥주에 수도회의 이름만 가져다가 사용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이 때문에 맛과 품질이 엉망인 맥주들이 마치 수도회 수사들이 만든 것인냥 알려지게 되었고
이를 보다 못한 트라피스트회에서 직접 나서게 되었다.

바로 Athentic Trappist Product라는 인증을 만든 것이다.
이 인증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 트라피스트 에일은 트라피스트 수도원 담장 안에서 수도자의 철저한 관리하에서 양조되어야만 한다.
- 트라피스트 에일의 상업적 목적은 이윤 창출과 무관해야 한다.
- 트라피스트 에일의 상업적 방침은 오직 수도원에만 달려 있다.
- 양조장에서의 모든 일은 반드시 수도생활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며, 상업적인 모든 행위는 차선으로 한다.
이렇게 철저한 검증을 바탕으로 인증된 소수의 수도원 양조장만이 ATP의 방패를 달고 맥주를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수의 트라피스트 에일 가운데 엥켈(Enkel)은 더욱 적은 수의 양조장만이 판매를 하고 있다.
엥켈은 대체로 낮은 도수로 판매보단 수도원 내에서의 직접 소비를 목적으로 양조된다.
때문에 Patersbier(수사의 맥주)라고 부르기도 하며 농담으로 스텝밀, 수도원 우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 리뷰할 시메이 골드 또한 트라피스트 에일 중 엥켈이며 원래는 수도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펍에서만 판매를 하고 있다가
감사하게도 글로벌 유통이 되었다.
사족이 이렇게 길었던 이유는 참 귀한 맥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주를 간단히 마트에 가는 것만으로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제, 먹어보도록 하자.

시메이 골드(Chimay Gold)
Trappist Ale
ABV: 4.8
IBU: 16
언탭 점수: 3.65/5 (2023.03)
4,200 KRW
짙은 금빛의 라벨과 병이 인상적이며 벨기에 맥주답게 프랑스어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이 맥주를 양조한 스쿠어몽트 수도원(Abbaye de Scourmont)의 상징이 병에 양각으로 되어 있고
라벨의 아래 정중앙에는 ATP의 방패모양도 확인할 수 있다.

거품은 일반적인 벨지언 에일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가볍다.
그러나 헤드의 유지력은 꽤 긴 편이고 입에 닿는 느낌도 굉장히 부드럽다.
색의 경우도 시메이의 다른 맥주들에 비해 더 밝고 투명한 편이지만 엥켈임에도 확실히 벨지언 에일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는 정도이다.
시메이 골드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외관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전용잔은 내가 참 좋아하는 고블렛의 형태인데 이것은 미사의 전례에 사용하는 성작(聖爵, chalice, calix)의 형태와 같다.
때문에 림에는 황금색 테두리가 둘러져 있고 이것은 다른 트라피스트 에일이나 애비 에일의 전용잔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잔에 맥주를 따를 때부터 느껴지는 향이 아주 좋다.
오렌지, 꽃, 꿀, 고수씨의 향이 그대로 느껴지며 고소한 곡물의 향도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든 향이 매우 균형잡힌 형태로 다가온다.
향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한 모금 크게 들이켜보았다.
바디감은 가볍고 탄산도 강하지 않지만 입 안을 꽉 채우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입 안을 꽉 채우는 것은 바로 부드러움이다.
향에서 느껴진 여러 요소들이 맛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며 그 사이사이를 부드러움으로 채운다.
두벨(Dubbel)이상 체급의 벨지언 에일이 가진 폭발적인 향미가 줄어든만큼 홉과 몰트의 맛도 옅어졌지만 존재감은 확실한 편이다.
벨지언 에일의 압도적인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벨지언 에일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이것이 세련된 균형미를 가진 고급 맥주라는 것은 아주 쉽게 느껴질 것이다.
매일 먹기에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맥주라는 것에 카스나 테라만 마시는 사람도,
트라피스트 에일의 끝판왕인 베스트플레이터런 12(Westvleteren 12)을 마셔본 사람도
이 맥주를 매일 먹기에도 너무나 좋은 맥주라고 말한다는 것으로 설명을 마칠 수 있겠다.
맥주를 만드는 수도자들이 매일 마시는 맥주라는데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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